『梅泉野録』 第1冊 上(1894年以前) ① 8. 明聖王后の出現
『梅泉野録』 第1冊
上(1894年以前) ① 8. 明聖王后の出現 哲宗この崩御した後 后嗣がなかった. 哲宗は早くから 煕に志を抱いていたので 章動 金さんたちは彼を擁立しようと思った. これに 金興根銀, “興宣君このあるからこれは二人の賃金があるわけです. どうして二人の賃金を仕えることができますか? 必ずやめアンウリョのよ フングソングンを擁立してください”と言った. この時 金炳学銀 フングソングン科約束して彼の娘を王妃に選ぶ事にした. これは外戚の基盤を用意しようと日韓だ. しかし 喜が上がって フングソングンこれ 大院君に昇格されてから 金兵学を裏切って国婚を 閔致禄 本館は 驪興. 領議政科 驪城府院君に追贈される. の娘に決めた. こちらがところで 明成王后である. その後 金兵学の娘は 趙臣煕に嫁入りした. 8. 명성왕후의 출현 철종이 승하한 후 后嗣가 없었다. 철종은 일찍부터 熙에게 뜻을 두고 있었으므로 장동 김씨들은 그를 옹립하려고 하였다. 이에 金興根은, “興宣君이 있으니 이것은 두 임금이 있는 셈입니다. 어찌 두 임금을 섬길 수 있겠습니까? 꼭 그만두지 않으려거든 흥선군을 옹립하십시오”라고 하였다. 이때 金炳學은 흥선군과 약속하여 그의 딸을 왕비로 간택하기로 하였다. 이는 외척의 기반을 마련하려고 한 일이다. 그러나 희가 등극하여 흥선군이 대원군으로 승격되면서부터 김병학을 배반하고 국혼을 閔致祿 본관은 驪興. 영의정과 驪城府院君으로 추증됨. 의 딸에게 정하였다. 이분이 바로 明成王后이다. 그 후 김병학의 딸은 趙臣熙에게 출가하였다. 哲宗薨, 無嗣, 哲宗甞屬意於今上, 故諸金欲援立之, 興根曰, 興宣君在, 是二君也, 二君可得事乎, 毋已則直興宣君可耳, 炳學約興宣君, 以其女揀長秋之選, 則戚里固自如也, 上旣立, 興宣君尊爲大院君, 即背炳學, 定國婚于閔致祿之孤女, 即明成皇后也, 炳學之女, 後適趙臣熙。
by naver007
| 2007-02-15 17:36
| ■梅泉野録 機械翻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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